보이저 1호는 1977년 9월 5일, 태양계 행성 임장이 주 목적으로 발사된 무게 722kg 심우주 탐사선이다. 하루 평균 147만km를 35년간 달려 2012년 태양권을 벗어나 성간(Interstellar)에 진입한 최초의 존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비슷한 시기에 사람으로 태어난 직장인 Voice 1,2호의 무지성 통신이 오늘도 시작된다. 각자 원하는 주제에 한쪽이 걸려들기를 바라는 수준, 인생에 매우 무가치한 내용으로 보이스 피싱에 가깝다. 길게는 30분 가까이 지속.
매일 30분이면 인생을 바꾸기 충분하다는 사람들이 열변을 토하는 모든 것들을 시도해 보기 충분하다.
30분의 달리기, 웨이트 트레이닝, 명상, 낮잠, 독서, 글쓰기, 영단어 외우기 등등
잠깐의 시간조차 무의미한 것들로 가득차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면, 대부분 영상매체에 심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모른다.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반적인 행동양식으로 여긴다. 어제 봤던 티비쇼에 대해 누군가 공중으로 발언을 내뱉는 즉시 다른이의 입이 반사적으로 열리고 세상 쓸데없는 시간낭비가 시작된다.
지난 주말 밤 잠시 창 밖을 바라보던 아내는 월요일을 앞두고도 꽤 늦은시간까지 불이 켜있는 집들이 많다는 얘기를 하고, 나는 십수년간 전파로 약을 파는 중독의 비즈니스가 이렇게나 성공했다고 답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아기들의 영상을 보고 신기해 할 게 아니라 그만큼 접근성이 낮고 쓸모없는 것들과 평생가기 쉽다는 걸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경각심을 느끼지 못하는 수준으로 중독시키는 게 기업의 목적이다.
학부시절을 대인관계의 깊이에 빠져 학점관리의 중요함을 4학년 즈음에 깨달았던 나는 조금 더 좋은 직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 남들보다 느리고 가장 어려운 방법에 뛰어들기로 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인생을 내던질 정도로 무식하게 놀지는 않았나 보다.
놓쳐버린 시간의 공백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달려가는 게 최우선이라는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다행이도 결코 헛되지 않았던 인간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졸업 조건이 매우 까다로운 연구실의 석사입학을 승인 받았다.
제한된 시간과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평소 책 한권도 안보는 주제(꼴에 스티븐 킹, 필립 K딕, 아서 클라크,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작품은 집요하게, 심지어 사서 읽었다.)에 어쩔수 없이 매일 글을 읽었다. 매주 토론을 준비해야 하기에 억지로 글을 썼다. 나보다 일찍 공부가 습관으로 자리잡힌 동료들을 쫓아가기 바쁜 마당에 탈출따위 잡생각을 줄이기 위해서 매일 한시간 이상을 걸었다. 여유가 생기면 남들보다는 그나마 자신있는 쇠질과 함께 인생의 무게를 들어올렸다.
정신없이 보내고 30대가 되던 해, 당시 나의 세계관에서 그나마 좋은 일자리를 얻어 너무 늦지 않게 뛰어들었으니, 누구보다 2년 전 나에게 감사했다. 시간이 지나 일이 익숙해진 30대 중반에 접어들게 되자, 자연스럽게 TV와 영화가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뭐 어렸을때부터 좋아했고, 뭔가 대단한 지식을 얻는거 마냥 다음날이 쉬는 날이든 출장을 가는 날이든 밤늦게까지 신경쓰지 않고 즐겼다. 생각할 수록 섬뜩하다. 지금까지 그대로 살았더라면 나 또한 대중들의 보이스 피싱에 낚여 타인과 차별되지 않는 사고를 가졌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십대부터 시작된 중력을 거스르는 쇠질에 대한 심한 집착이 결과적으로 나의 미래를 구한거 같다. 소파에 계속 누워있고 싶다가도 서서 한쪽다리를 들고 영화를 보게 된다. 주말 아침 일찍 극장에 가기위해 한 두시간은 그냥 걸었다. 가는 길에 눈여겨본 새로운 체육관을 찾아가는 것은 쇼핑따위와 비교되지 않는 커다란 재미였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주변을 둘러본다. 특정 시간이 되면 어딘가 삶의 방향성이 비슷한 두사람 세사람이 모여든다. 서로의 뇌를 흥분시키며 이 기분 더블로 가자고 담배를 태우러 밖으로 나가는 패턴.
그들 인생의 30분이 또 그렇게 의미를 잃고 사라졌다. 77년생 Voice 1호, 2호.
현재 보이저 1호의 기대수명은 2036년으로 추정되지만 놀랍게도 설계당시 활동예상 기간은 5년에 불과했다.
보이저가 발사되던 그 해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발사 한달 전 1977년 8월 15일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 전파망원경에 약 72초간 외계의 신호가 포착되었다. 이 신호는 발견자의 놀라움을 담아 “와우 시그널(수소원자가 방출하는 1420MHz 주파수 대역으로 외계 생명체 발신설 태동)“이라 불린다. 이처럼 광활한 우주공간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전파가 무수히 돌아다닌다. 지구의 라디오 TV 전파 또한 우주로 나간다. 그리고 우주에 존재하는 물체는 이 전파를 수신하여 필요한 상대와 정보를 교류한다.
그렇다면 보이저는 자체 보정 기능도 없고,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환경에서 어떻게 기대수명을 한참 넘겨 더 멀리 가게 되었을까.
- 끝도 없고,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사진촬영과 정보수집으로 하루하루 살아다가 어느날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존재가 된 것인가.
- 지구의 샘플을 원하는 문명에서 자신들에게 향하도록 보이저가 수신가능한 업그레이드를 시도한 것이다.
- 와우시그널이 발사 한달전에 포착된 것은 우연인가. 지구의 존재를 알고 있는 또 다른 문명에서 미래의 침공을 막아주고자 정보를 보냈다. 그러나 2에서 언급한 문명이 이를 차단했다. 그래서 예정대로 발사되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다만 과정에 놓여있을 때는 알아차릴 방법이 없다. 시간이 지나서야 돌이켜보고 누군가 열심히 알려주려 하지만 대부분은 믿지 않는다.
갑자기 등장한 스마트폰이 인간의 행동양식을 역대 가장 빠른 시간내 변화시킨 이치와 같다. 인류는 고도의 문명이 개입한 방향으로 이어지는 실험대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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