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 아침 7시 50분 기차편으로 부산에 왔다. 업무상 운전으로 편도 3시간이 넘는 길은 대체로 고속열차를 이용하는 편이다. 열차는 목적지까지 이동에 필요한 나의 수고를 대신해주고, 수고비는 나의 고용주가 지급한다. 때문에 출장지까지 고속열차를 이용하는 쪽이 편하다는 인식이 대부분이겠지만, 내 경우는 얘기가 조금 다르다. 나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 작은 푸조와 함께 집을 나서 선호하는 루트를 따라(또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여) 여정 전체를 기억에 남기는 편이 훨씬 즐겁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의 고속열차는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불편하다. 이동하는 동안 책을 읽을수도, 잠을 청할수도, 무언가를 생각할 수도 있는 것도 좋지만 기차에 오를때마다 구석구석 낡고 관리되지 않은 모습이 늘 아쉽다. 우선 지역이 달라도, 그 규모가 달라도 고속열차 역사의 외양은 모두 엇비슷하다. 이름만 다른 빵집의 유행하는 상품, 자극적인 음료와 맛없는 커피를 파는 카페가 가득찬 역사에 들러 의미없는 돈을 지불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싫다. 짧은 시간이라도 혹은 길을 잘못 들더라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 편이 훨씬 즐겁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서 기본적으로 약속시간에 늦지는 않는다.
부산에 도착해 오랜만에 일본계 비즈니스 호텔에 하루를 묵었다. 거의 10년만이다. 세월이 지나 내 삶의 경험이 늘어나는 시간만큼 닳고 초라해 보였지만, 새 것과 같은 엘리베이터 컨디션과 확장된 식당, 그리고 객실의 작은 부분까지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는 모습이 놀라웠다. 비슷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낡아버린 고속열차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일본이 부러울 때가 있다. 아니 많다. 한국의 고속열차보다 몇 배 오랜 역사를 가진 신칸센은 언제나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기차를 이용할 수 있는 전국의 모든 역사는 각자의 개성이 넘친다. 외양도 다르고, 파는 물건도 다르다. 자신들의 지역에 찾아오게 만드는 이유가 각자 다르고 명분이 확실하다.
한국은 서울도 불꽃축제를 하고 부산도 불꽃축제를 한다. 무슨차이가 있느냐, 없다. 그저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 다른곳에서 했으면 이곳에서도 그냥 같아야 한다. 참 희한한 사고방식이다. 똑같이 머릿수 백만 채우기에 혈안이 되어있고, 다음날 기사는 어김없이 “백만인파 환호, 성공적“.
횡성에서 한우축제를 열고, 정읍에서도 같은 축제를 연다. 아니 대한민국에는 서로 한우의 고장이라고 우기는 지역이 셀 수 없다. 한우가 그토록 훌륭한 식재료인가? 어차피 어딜가나 가격 차이도 없고, 숯불 또는 가스버너에 구워 가위로 잘라먹는 방법외에는 생각해 본 적 없지 않은가? 언젠가부터 내가 지불하는 식사비에 열심히 키워낸 독자적인 식자재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죄다 방송에 출연했다는 천장이 매우 높은 식당의 투자비와 수많은 외국인 직원들 급여가 나에게 돌아오는 느낌 뿐이다.
한국의 고속도로 운전이 익숙한 분들은 공감할 것이다. 고속도로를 따라 끝도 없이 펼쳐진 축사로 인해, 도의 경계가 바뀌어도 창문 한 번 열기가 두려울 지경이다. 이쯤되면 근방에 냄새나는 축사가 있으니 환기에 주의하라는 경고 메세지도 내비게이션에 넣어주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비슷한 예로, 오늘 명동에서 동전 모양의 치즈가 들어있는 빵을 팔면 내일 도쿄 한인타운에서도 판다. 그냥 늘 남을 따라하는 쉬운 선택뿐이다.
나는 이번에도 싫어하는 기차를 타고와서 처음보는 사람들을 만나 설득을 마치고, 주어진 비용에서 겨우 편히 쉴 수 있는 숙소를 견뎌내고 돌아간다. 내 노력에 따라 소득이 달라지기에 한 달에도 몇 번은 당연하게 해야할 일이라 생각한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여행과 출장은 이동수단과 숙소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우선 순위가 다를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여행과 같은 진짜 내 시간을 풍족하게 보내고 싶기에 불편하지만 소득행위에 집중할 뿐이다. 부족한 출장비, 불편한 이동수단(오늘따라 더욱)등 그 외의 것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내 인생을 유지해주는 급여에 정부가 어느정도 개입이 되어있는지 세세하게 따져 본 적이라도 있는가.
대한민국 사람들이 마땅한 대체제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이용할 뿐이다. 비싼 요금내고 앉을 곳도 마땅치 않은 역사를 견디고, 흔들리는 테이블의 불편함을 겪는 승객들이 언제 정부나 코레일에 불만을 갖고 단체 행동에 나서는 일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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