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모든 것에는 영혼이 있다.

내가 가진 모든 물건에는 영혼이 있다. 그래서 아무 물건이나 내 곁에 두고 싶지가 않다. 영혼이라기보다는 애정을 가진다고 말을 바꿔야 할까.

남편과 결혼하기 전, 소개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남편이 약속 장소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작은 SUV를 가지고 나왔다. 그때가 ‘돼룩이’를 만난 첫날이었다. 남편은 항상 말했다. 당신을 만나고 나서 돼룩이가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본인한테 온 것 같다고. 실제로 남편은 나를 만나기 전까지 기존의 차를 처분하고 집도 팔며, 한국에서의 생활을 다 정리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나와 소개팅을 한 후, 그토록 갖고 싶었던 푸조 SUV가 중고 시장에 매물로 나왔단다. 신형인데다 1만 킬로도 채 되지 않은 아주 좋은 조건. 연비 좋고 콤팩트한 이 녀석을 남편은 당장 운명처럼 구매했다.

실제로 돼룩이는 연비가 참 좋았고, SUV치고 체구도 작고 날렵했다. 세계에서 가장 험한 랠리로 손꼽히는 다카르 랠리에서 전설적인 성적을 거둔 모델이라며, 남편은 그 덩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핸들을 돌릴 때면 레이싱하는 기분이 난다고 좋아했다. 남편은 항상 돼룩이에게 좋은 신발을 신겨주고 싶어 했다. 타이어는 늘 미슐랭으로, 디젤 차량이라 냉각수도 늘 좋은 걸로만 먹였다. 그렇다고 유난스럽게 아꼈던 건 아니다. 내부 청소를 매일 하지는 못해도 쓰레기를 방치하거나 먼지를 쌓아두지는 않았다. 최대한 깔끔하게 유지해주되, ‘신발’만큼은 제대로 신기자는 주의였다.

돼룩이는 우리를 여기저기 참 많이도 데려다주었다. 내가 회사와 대학원 수업을 병행하던 시절, 남편은 주말에도 학교 도서관과 집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논문을 쓸 때도, 발표할 때도 늘 돼룩이가 함께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코로나가 한창일 때 떠난 국내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강원도 벌판에서 주유 시간을 놓쳐 돼룩이가 배고프다며 멈춰버릴까 봐, 식은땀을 흘리며 주유소를 찾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돼룩이는 안전하게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4시간을 달려 부산에서 국밥을 먹고, 남해에서 해산물을 먹고 바로 서울로 올라오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당일치기 여행에도 돼룩이는 군말 없이 함께해주었다.

이직 준비를 하던 시절, 면접에 늦을까 봐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도 돼룩이는 정확하게 나를 면접 장소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뿐일까. 남편과 두 차례 이사를 하는 동안 돼룩이는 소형 가전과 우리 짐들을 부지런히 이고 날라주었다. 야외 결혼식을 결심하고 플래너 없이 혼자 모든 것을 준비하느라 여기저기 다녀야 할 곳도, 준비할 것도 참 많았는데 그때도 돼룩이가 함께했다.

그런 돼룩이가 어느 날부터 도로 위에서 툭하면 멈추기 시작했다. 신혼여행 가기 전 오토바이가 돼룩이 엉덩이를 살짝 쳤던 경미한 사고 이후로 시름시름 앓았던 것 같다고 남편은 짐작했다. 사실 돼룩이는 리콜 경험도 많고 하자가 좀 있는 녀석이긴 했다.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한 건 2025년 들어서였다. 애정이 깊었음에도 툭하면 병원 신세를 지고 병원비가 만만찮게 들기 시작하자, 어느덧 고마움보다는 애물단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돼룩이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남편은 공식 서비스 센터에서 큰돈을 들여 모든 걸 수리했다. 혹시 모르니 꼼꼼하게 최대한 다 교체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돼룩이 몰래 새 차를 계약하고, 돼룩이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조용히 보내주었다. 좋은 주인을 만나 그 주인의 인생도 잘 다듬어 주기를 빌면서.

남편에게 돼룩이는 유독 각별했다. 돼룩이를 만나 나를 만났고, 결혼하고, 내가 공부를 마치고 이직하는 과정을 다 지켜봤으며, 결국 집도 샀다. 남편은 돼룩이가 5년 동안 우리 곁에서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제 기력이 다한 것 같다고 했다. 새로운 주인을 만나면 다시 활발해져서 그 사람의 인생도 좋은 방향으로 바꿔줄 것이라고.

늘 생각한다. 나와 함께하는 물건에는 영혼이 있고, 우리는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그래서 물건 하나를 두더라도 되도록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곁에 두려 한다. 그 물건이 내 인생을 또 어디로 데려다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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